1,400년전 정치철학 정관정요(貞觀政要)

임원식 취재본부장
임원식 취재본부장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말과 같은 뜻을 지닌 수능재주(水能載舟) 역능복주(亦能覆舟)’라는 말도 있다. 당태종 이세민의 정치철학을 담은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나오는 말로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또한 배를 전복시킬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정관정요>는 당나라 왕조의 기틀을 마련한 태종 이세민(李世民, 627649)이 선정을 펴기 위해 만든 정치철학이 담긴 정책지침서다. 이 책의 서두만 보더라도 당태종이 얼마나 백성의 관점에서 정치를 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다.

 

군주의 도리는 먼저 백성을 생각하는 것이오. 만일 백성들을 손상시켜 가면서 군주의 욕심을 채운다면, 마치 자기 다리를 베어 배를 채우는 것과 같아서 배는 부를지언정 곧 죽게 될 것이오. 만일 군주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한마디라도 한다면, 백성들은 그 때문에 사분오열할 것이고, 또는 마음을 바꾸어 원한을 품고 역모하는 자도 생길 것이오. 나는 항상 이러한 이치를 생각하고 감히 나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했기에 태종은 충간(忠諫)하는 위징(魏徵, 580643)의 말을 늘 마음속에 새기면서 정치의 지침을 삼고자 했다. 그는 창업하는 과정에서 피비린내 나는 골육상쟁하는 형제의 난을 겪으면서 제위(帝位)에 등극하였으면서도 문민정치를 실행하였다.

 

태종은 철저한 자기관리와 겸허한 지도력으로 신하들과 허심탄회하게 토론하면서 정치를 했다. 그리고 백성들과 모든 동고동락을 함께 하려고 노력했다. 때문에 위징이 300번 이상 간언을 하여도 사심없이 간언을 받아들여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으려 했다.

 

특히 민생안정에 온 정성을 기울여 부역을 줄여주고 세금을 가볍게 하여 백성들을 아꼈다. 또 형법을 신중하고 가볍게 사용하여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심문과 재판과정을 전부 기록하고 법제를 보존시켰다.

 

당태종이 다스린 23년여 제위기간을 정관의 다스림이라고 하여 그 치적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죽이려한 위징을 정적이었지만 측근으로 등용했다. 이렇게 어떤 인물이 유능하다고 생각하면 설령 정적 진영(政敵陣營)에 속했던 사람이더라도 서슴없이 측근으로 등용하는데서 당태종의 그릇의 크기를 알 수 있다.

 

위징은 태종의 기대에 부응하여 직언으로써 보좌의 책임을 다했다. 위징은 드물게 보는 강직한 성품으로 그의 거침없는 충간직언에 태종이 무안해진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때문에 위징이 없이는 명군 태종도 없고 정관의 정치도 없었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당태종 17, 위징이 죽자 태종은 사흘간 식음을 전폐하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한다. 군주가 신하의 죽음에 3일 동안이나 식음을 전폐하였다면 그 위징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었으며 큰 충신이었든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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