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조선 왕조의 비극적 멸망을 초래하였는가?

원린수 본지 법률자문위원
원린수 본지 법률자문위원

[기고=원린수 본지 법률자문위원] 뒤늦은 개항과 근대화의 실패, 세도정치와 부정부패, 열강의 거센 침략 등의 여러 이유들이 있으며 관리들의 부정과 부패는 조선 패망의 중요한 내적 요인이 되었다.

삼정(三政)의 문란 조선 후기 중앙정치를 주도하는 세도가들을 통해 관직을 사기 시작했고, 그렇게 공직을 매관매직한 자들은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온갖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하였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은 조선 정조 때 문신으로 뛰어난 시인이자 철학자이다중농주의 실학자로 조선 실학을 집대성 하였으며, 공직자들의 마음가짐과 행동거지를 지침한 '목민심서,경세유표'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이계심의 난을 통해 본 다산의 사상은, 황해도 곡산에서 이계심이란 자가 날마다 불법 시위를 벌렸다. 정약용은 곡산부사로 내려갔다.

가는 길에 정약용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 억울한 사연을 풀고자 한 이계심이 정약용에게 항소문을 바쳤다. 다산 정약용은 이계심을 관아로 데려가 진상 조사를 하였다.

군포 사건에 대하여 이계심은 정약용에게 백성들의 고통을 낱낱이 적은 12조목을 건넸다. 거기에는 정약용 부임 직전 서리들이 포보포(砲保布, 포군에게 내는 군포) 대금으로 200전을 걷어야 하는데 백성들에게 무려 900전이나 걷어 빼돌린 사실이 적혀 있었다. 이에 백성들의 원성이 이어졌고 이계심이 우두머리가 돼 1000여 명을 모아 관아에 들어가 호소한 것인데, 오히려 죄인으로 몰려 고통을 당했던 것이다.

다산 선생의 판결문, 관이 부패한 것은 민이 제 몸만 위하고 관에게 항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계심과 같은 사람은 관이 천금을 주고 사서라도 보상해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官所以不明者民工於謨身하고 不以漠犯官也니라 如汝者官當以千金買之也니라)

남이 아닌 내가 그릇된 것은 그릇됐다.’ 고 해야 정의가 실현되는 바른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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